살인의 기록부(웹소설)

7화. 관리자의 그림자

gmast 2025. 8. 19. 11:35

7화. 관리자의 그림자

강태준은 어둡게 내려앉은 지하신도의 밤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벽 틈새에 매달린 네온사인들은 깜빡이며 무언가의 신호처럼 그의 눈앞을 스쳐갔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머니 속 USB를 더 꼭 쥐었다. 차가운 금속 감촉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맥박과 같은 리듬으로 뛰고 있었다.

“찾고 있던 게 있나 보군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낮고, 부드럽지만 섬뜩했다.
태준은 몸을 돌렸다.

골목 끝에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반쯤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으나, 눈빛만은 차갑게 빛났다.
그의 손에 들린 은빛 지팡이가 콘크리트 바닥을 툭 하고 두드리자, 주위 소음이 멎은 듯 고요가 밀려왔다.

“당신이… 관리자?”
태준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떨려 나왔다.

“관리자라 불리든, 그림자라 불리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이미 선을 넘어섰다는 사실이죠.”
남자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배신의 그림자

그때, 골목 반대편에서 서둘러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박진호였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태준 앞을 가로막듯 섰다.

“태준, 여기서 빠져나가!”
진호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지만, 눈빛은 어딘가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넌… 이 사람을 아는 거지?”
태준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진호가 지금껏 무언가를 숨겨왔다는 사실을.

관리자는 천천히 손바닥을 펼쳤다. 마치 오래 전부터 기다려온 장면을 즐기는 듯했다.
“진호 형사, 이제 그만 하죠. 당신의 역할은 충분히 끝났습니다.”

그 한마디에 태준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역할…? 설마… 너, 그동안—”

진호는 눈을 감았다가 뜨며 낮게 읊조렸다.
“내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 네가 모르는 일이 있었단 말이야. 이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배신이란 이름으로 포장할 거냐?”
태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빛 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양심이 희미하게 번쩍였다.


민서의 과거

바로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나타났다. 김민서였다.
그녀는 망설임도 없이 태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관리자. 당신은 여전히 똑같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관리자는 고개를 기울이며 흥미롭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네 기억을 지우지 않았구나. 아니, 혹시 일부러 붙들고 있는 건가? 열여섯 살 그때, 네 앞에서 피 흘리던 사람의 얼굴을.”

민서의 표정이 단숨에 일그러졌다.
“그건… 우발적 사고가 아니었어. 당신이 꾸민 일이었잖아.”

태준은 충격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민서 씨… 그게 무슨 말이야?”

민서는 떨리는 손끝으로 태준을 향해 다가서며 속삭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기록부를 봤어요. 그리고 알았죠. 이 도시는 누군가의 장부 속에 이미 계산된 숫자일 뿐이라는 걸.”


기록부의 목소리

갑자기 태준의 USB가 불빛을 내뿜으며 스스로 켜졌다.
이어지는 듯, 기묘한 전자음과 함께 화면에 글자가 떠올랐다.

[기록부 로그 2037-11-12 00:07]
대상: 강태준
상태: 관찰 중
주석: “목격자는 곧 선택받은 자. 배신은 정해진 수순. 관리자 또한 기록의 일부일 뿐.”

태준은 숨이 막혔다. 기록부가 ‘관리자조차 기록의 일부’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그 말은 곧,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모든 이가 누군가의 계산에 갇혀 있다는 뜻이었다.


균열

“보셨습니까, 태준 씨?” 관리자의 눈동자가 번쩍였다.
“당신도 이제 알겠죠. 여기서 누가 진짜 주인인지.”

태준은 흔들리는 시선을 억눌렀다.
그의 눈앞에는 배신한 동료 박진호, 지울 수 없는 과거에 묶인 김민서, 그리고 인간인지 기계인지 알 수 없는 관리자가 동시에 서 있었다.

세 사람의 숨결이 뒤엉키는 순간, 골목은 폭발 직전의 긴장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태준은 깨달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의 선택이, 앞으로 모두의 운명을 가를 것임을.


8화 예고 ― 〈불길 속의 진실〉

태준이 관리자의 제안 앞에서 갈등하는 사이, 지하신도 전역을 뒤흔드는 폭발 사건이 발생한다.
박진호의 진짜 동기, 민서의 과거 속에 숨은 또 다른 이름, 그리고 기록부의 진짜 목적이 불길 속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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