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록부(웹소설)

5화 . 가짜와 진짜

gmast 2025. 8. 18. 11:05

5화 . 가짜와 진짜

USB의 심장
아파트 불빛을 꺼둔 채, 태준은 책상 앞에 앉아 USB를 바라봤다.
차갑고 작은 금속 덩어리 하나가 그의 목을 조여 오는 듯했다.
민서의 메모가 떠올랐다.

“기록부는 단순히 기록하지 않는다. 때로는 사람을 기록 속에 가둔다.”

그녀가 남긴 경고는 단순한 과장이 아니었다.
USB 속 화면에 떠오른 ‘가해자: 강태준’이라는 문장은 이미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태준은 경찰 시절부터 늘 증거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증거가 아니라 기록이 증거를 만든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내가 하지도 않은 살인을, 세상이 나에게 덮어씌울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살인자가 된 거 아닌가?’

 

지하신도의 균열
새벽녘, 태준은 몰래 집을 나섰다.
제5구역 쓰레기 처리장. 기록에 나온 사건 현장을 직접 확인해야 했다.

버려진 쓰레기 더미 사이, 그는 검게 그을린 흔적을 발견했다. 무언가 태워진 자리.
그 자리는 ‘누군가 죽어 사라진 흔적’이라기보다,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운 장소처럼 보였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가 허리를 굽히는 순간, 뒤편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강태준?”

태준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폐허 같은 공간 속에 서 있는 낯선 청년. 눈빛은 굳어 있었고, 손에는 낡은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당신이 그날 여기 있었잖아요. 내가 봤어요.”

숨이 막혔다. 목격자.
하지만 태준은 그날 이곳에 온 적이 없었다.

 

목격자의 증언
청년은 다급히 화면을 내밀었다.
흐릿한 CCTV 캡처.
그 속에는… 태준과 닮은 남자가 피투성이 작업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당신이 피해자를 끌고 갔어요. 경찰에도 이미 자료 넘겼습니다.”
태준은 얼어붙었다.
“그건 내가 아냐.”
하지만 그의 목소리조차 흔들렸다.

태준은 깨달았다. 기록부가 작성한 순간, 세상은 증거와 목격자를 ‘만들어낸다’.
진짜냐 가짜냐는 의미가 없었다. 기록이 곧 현실을 정의하는 셈이었다.

 

박진호의 갈등
같은 시간, 경찰청 내 보고실.
형사 박진호는 책상 위의 공식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사건 번호 521-3.
가해자: 강태준.

보고서를 읽는 그의 손은 굳어 있었고, 입술은 미세하게 떨렸다.
태준은 그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였다. 하지만 문서 앞에서는 친구도 무력했다.

“진호 형사님.”
후배가 들어와 중간보고를 올렸다.
“현장 CCTV, 목격자 진술 모두 확보됐습니다. 강태준이 범인으로 특정됐습니다.”

박진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눈앞의 종이 한 장이, 그의 믿음과 충성심을 동시에 무너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자 속의 경고
밤. 태준은 다시 민서를 찾아갔다.
“이건 조작이야. 그렇지?”
그녀는 말없이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부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 하지만… 살인자를 만들어내지.”
민서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게 무슨 소리야?”
“관리자는 필요할 때마다 희생양을 세상에 던져요. 그리고 기록부가 그걸 증명하죠. 강태준… 이번엔 당신 차례예요.”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태준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사 박진호였다.
그의 눈빛은 무겁고, 복잡했다.

“태준… 이제 그만해. 더 가면 넌 진짜로 살인자가 될 거야.”


🔮 예고편 ― 6화 〈균열의 시작〉
박진호는 친구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관리자의 명령에 굴복할 것인가.
민서는 태준에게 새로운 단서를 건네지만, 그것은 또 다른 함정을 예고한다.
USB 안에서 드러난 진짜 데이터가 지하신도의 균열을 폭로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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