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록부(웹소설)

4화. 그림자의 언어

gmast 2025. 8. 17. 11:05

강태준은 건조한 입술을 혀로 훑으며, 주머니 속 낡은 USB를 더 꼭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차갑게 닿는 금속 감촉이 마치 자신을 감시하는 눈동자처럼 섬뜩했다.

김민서.
그녀는 언제나 반쯤은 농담처럼, 반쯤은 죽음을 예감한 듯한 얼굴로 단서를 흘리고 사라졌다.
“열지 마세요. 하지만 필요할 겁니다.”
짧은 문장이 지금껏 들어본 어떤 협박보다 무겁게 태준의 머릿속을 짓눌렀다.


1. 기록부의 가짜 기록

아파트에 도착한 태준은 문을 잠그고 곧장 컴퓨터를 켰다.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벌써 두려움에 잠식당해 있었다.
“열지 말라면… 더 열어봐야지.”
스스로 중얼거린 뒤, USB를 꽂았다.

순간, 모니터 화면이 검게 변하며 전자음이 울렸다.
낡은 기계가 낼 법 없는 불길한 진동이었다. 곧이어 화면 가득 흘러내리듯 문장이 뜨기 시작했다.

 
[기록부 - 비인가 접속 감지] 경고 : 허가되지 않은 열람입니다.

그 아래, 차갑게 기재된 사건 기록.
3일 전. 지하신도 제5구역 쓰레기 처리장.
피해자: 무명(식별번호만 존재).
그리고 마지막 줄.

[가해자: 강태준]

숨이 뚝 멎는 듯한 공포.
태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자를 쓰러뜨렸다.
“이건… 말도 안 돼. 내가…?”
그는 제5구역 근처에 가본 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기록부는 마치 신의 계시처럼 사실을 명령하듯 써내려가고 있었다.

태준은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경찰 출신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기록부에 남은 기록은 곧 현실이 된다.’
세상은 그 기록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그것이 사실처럼 맞아떨어지도록 굴러간다.


2. 지은의 경고

휴대폰 벨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발신자는 편집자 이지은.
“태준 씨, 지금 당장 밖으로 나와요.”
다급한 목소리였다.
“당신 집 앞에 누군가 있어요. 서성이며 문을 훔쳐보고 있어요.”

태준은 본능적으로 커튼을 젖혔다.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는 그림자 하나.
그 그림자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마치 태준이 보고 있다는 걸 아는 듯 시선을 맞췄다.
그 섬뜩한 순간, 태준은 핏줄이 서늘해졌다.

“누군데?”
“모르겠어요. 그런데… 느낌이 안 좋아요. 관리자의 사람 같아요.”
통화는 거기서 끊겼다.


3. 민서의 메모

책상 위에는 USB와 함께 남겨진 민서의 짧은 메모가 있었다.

“기록부는 단순히 기록하지 않는다. 때로는 사람을 기록 속에 가둔다.
당신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아도, 기록이 그렇게 쓴다면 세상은 이미 그렇게 믿는다.”

태준은 문장을 읽으며 알 수 없는 오한을 느꼈다.
그녀의 글씨는 급히 휘갈겨 쓴 듯했지만, 그 안에는 공포와 절망이 담겨 있었다.
‘민서는 이미 이런 상황을 경험한 걸까?’


4. 복도에서의 마주침

태준은 외투를 걸쳤다. 오래 머물다가는 덫에 걸릴 수 있다는 직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복도로 나서자, 정적이 감돌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그의 손끝에 땀이 맺혔다.
“쿵.”
낮게 울리며 문이 열렸다.

그 순간, 마주한 것은 낯선 남자였다.
높은 체격,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눈빛에 서린 차가운 무관심.
‘관리자’의 하수인.
형사 시절 여러 차례 접촉해본 그 특유의 느낌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태준은 본능적으로 숨을 고르며 눈을 피했다.
그러나 남자는 그를 똑바로 응시한 채,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 안쪽으로 몸을 비켰다.

“내려가시죠.”
차갑게 건네는 말.


5. 불안의 씨앗

엘리베이터 안은 답답할 만큼 좁고,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태준은 등 뒤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시선을 외면한 채 층수를 확인했다.
바늘이 내려갈수록, 불안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는 낯선 번호.
메시지가 한 줄 도착했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마라. 기록이 곧 진짜다.”

엘리베이터의 불빛이 잠시 꺼졌다 켜졌다.
옆의 남자가 웃었는지, 아니면 빛의 착각인지 알 수 없었다.


예고편 ― 5화 〈가짜와 진짜〉

태준은 스스로를 가해자로 지목한 기록의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뜻밖의 목격자가 나타나며, 사건은 더 혼란스러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동시에 박진호 형사는 ‘강태준’의 이름이 들어간 공식 보고서를 받아들고 갈등에 빠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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