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증언의 대가
지하신도의 밤은 언제나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무게가 달랐다.
확대 공개, 단 3분. 기록부의 화면에 흘러나온 그 짧은 파편들이 도시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벽마다 붙은 불법 전광판이 폭주하듯 번쩍였고, 뒷골목의 술집 안에서는 낯선 이름들이 소곤거리듯 오르내렸다. 그 이름들은 살아 있는 자들의 것만이 아니었다. 오래전 죽은 줄 알았던 자들의 이름, 혹은 살아 있음에도 이미 기록부에서 삭제된 자들의 이름. 균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부터 번지기 시작했고, 결국 공동체의 신뢰 자체를 파괴하고 있었다.
강태준은 낡은 사무실 책상 위에 앉아, 차갑게 식은 커피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머릿속에서 그 장면이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기록부 : 로그 조각 #3128〉
- 상태: 공개됨
- 데이터: [민서 - 오빠의 사망 기록 수정]
- 누락된 필드 존재
“민서가… 조작을?”
태준의 목소리는 속삭임에도 불구하고 방 전체를 메아리쳤다.
옆에 앉아 있던 이지은은 차분하게 메모지를 덮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건 누군가가 민서의 이름을 미끼로 던진 거예요. 진실을 감추려면 언제나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의심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그러나 태준은 선뜻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증거는 너무 직접적이었고, 그 파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확산되고 있었다. 거리의 스피커에서는 ‘정화령’이 보류되었다는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보류라… 기록부가 즉시 처형 명단을 발표하지 않은 건 기이했다. 마치 더 정교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듯이.
그때, 사무실 안의 단말기에 붉은빛이 번쩍였다. 감사관의 서명이 담긴 명령문이었다.
〈감사 명령 : 표적 – 강태준, 김민서 / 대상 – ‘가장 가까운 기억’〉
“가장 가까운 기억을 표적으로 삼는다고…?”
이지은이 숨을 들이켰다.
그 의미는 곧바로 이해됐다. 감사관이 직접 개입한다는 건, 단순한 데이터 삭제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을 조작한다는 뜻이었다. 누군가의 증언을 무력화시키려면, 가장 사적인 기억에 손을 대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태준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치 누군가 이미 그의 뇌 속에 들어와 무언가를 긁어내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태준 씨.”
이지은이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 버티셔야 해요. 감사관이 개입하면, 기억은 허물처럼 벗겨져 나가요. 당신이 진짜로 기억하는 것과, 심어지는 거짓 사이에서… 스스로를 잃을 수도 있어요.”
“만약 내가 잃는다면, 민서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녀도 똑같아요. 아마 동시에 타격을 받을 거예요.”
잠시 후, 민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동자는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뭘 본 건지, 확신이 안 들어.”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오빠가 죽던 날. 나는 분명히 그 자리에 없었어.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아. 손에 피가 묻어 있던 것도, 들려오는 비명도… 너무 생생해.”
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민서에게 다가갔다.
“그건 네 기억이 아니야. 누군가 심어놓은 거다. 흔들리지 마.”
민서는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그 순간, 이지은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제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요. 불완전하지만, 증언을 대신할 보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지은은 서류 가방에서 오래된 기록 조각들을 꺼냈다. 낡은 저장 매체, 군데군데 지워진 문장, 파편 같은 증언들. 그녀는 그것들을 하나의 연속된 흐름으로 재조립하고 있었다.
“이건 과거의 증거예요. 완벽하진 않지만, 특정 사건이 왜곡되기 전의 흔적을 보증할 수 있어요. 대신—”
그녀는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더니, 차갑게 결론을 내렸다.
“대신 누군가의 이름을 대체해야 합니다. 한 자리를 지키려면, 다른 이름이 떨어져 나가야 하거든요. 그게 증언의 대가예요.”
민서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누구의 이름을?”
이지은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미 태준을 향해 있었다.
사무실 공기가 굳어졌다.
태준은 묵묵히 입술을 깨물었다. 이 선택은 단순히 이름 하나를 희생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기억, 증언, 그리고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선택을 미루기도 어려웠다. 감사관의 개입이 이미 시작되었고, 기록부는 그들의 숨을 조여오고 있었다.
그때,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오래된 캐비닛이 열렸다. 안쪽 깊은 서랍에서 작은 열쇠 하나가 떨어졌다.
태준은 깜짝 놀라 그것을 집어 들었다.
‘박진호…’ 그의 이름이 열쇠 손잡이에 새겨져 있었다.
“진호가 남긴 마지막 열쇠?”
이지은이 숨을 삼켰다.
민서가 열쇠를 두 손으로 감싸 쥐며 중얼거렸다.
“이건… 우리한테 남긴 길잡이일지도 몰라.”
태준은 직감했다.
이 열쇠는 단순한 물리적 장치가 아니라, 기록부의 깊숙한 층에 접근할 수 있는 암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진호는 생전에 늘 ‘진실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증언이 아니라, 증언이 증명할 수 있는 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 그 문이 뜻밖의 장소에서 열리려 하고 있었다.
태준은 숨을 고르고 민서와 이지은을 번갈아 보았다.
“우린 이제 선택해야 해. 이름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이 열쇠가 가리키는 문을 찾을 것인가.”
사무실 창밖에서는 도시의 소란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기억과 증언, 존재가 무너져가는 소리였다.
예고 ― 14화 〈감사의 방〉
박진호가 남긴 열쇠는 ‘감사의 방’이라 불리는 금지 구역을 향한다.
그곳에서 태준은 기록부가 왜 모든 증언을 탐내는지 마주하게 되고, 민서는 자신이 목격한 피의 기억이 진짜인지 환영인지 갈림길에 선다.
그리고, 감사관의 얼굴이 처음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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