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록부(웹소설)

14화 . 감사의 방

gmast 2025. 8. 27. 13:40

14화 . 감사의 방

박진호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열쇠는 손바닥 위에서 낯선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태준은 그것을 가만히 쥐며, 무게를 가늠했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녹슨 금속 조각에 불과했지만, 손끝에 닿는 감각은 묘하게 차갑고 날카로웠다. 마치 진실 그 자체를 움켜쥐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감사의 방.”
이지은이 낮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언가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기록부 내부에서도 거의 전설처럼 내려오는 금지 구역이에요. 그곳에 들어간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하죠.”

민서는 불안한 시선으로 태준을 바라봤다.
“진호 형사가… 왜 이런 열쇠를 남긴 걸까? 우리한테 그곳으로 가라는 건가? 아니면—”
그녀의 손이 떨렸다. “우리를 시험하는 건 아닐까?”

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고, 오래 전 진호와 함께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가 늘 중얼거리던 말.

“증언은 언제든 조작될 수 있다. 하지만 증언을 담는 그릇, 그 공간 자체는 거짓말하지 않아.”


사무실의 조명이 깜빡이며 꺼졌다. 동시에 단말기 화면에 새로운 로그가 뜨기 시작했다.

〈기록부 : 긴급 경고〉

  • 접근 시도 탐지: 감사의 방
  • 위치: 북부 폐철도 지하 7층
  • 상태: 봉인

이지은은 이를 악물었다.
“…역시. 진호는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려고 했던 거예요. 감사관의 눈을 피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 하지만 위험도 동시에 가장 크죠.”


폐철도 지하로 향하는 길은 지하신도 안에서도 버려진 구역이었다.
빛이 닿지 않는 곳, 오직 낡은 배선과 물비린내만이 가득한 터널 속.

세 사람은 손전등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은 지나치게 두꺼워, 불빛조차 가르지 못하는 듯 보였다. 물웅덩이를 밟을 때마다 ‘철컥’ 소리가 메아리쳤고, 그 메아리는 마치 누군가 뒤따라오는 발자국처럼 들렸다.

민서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누가 따라오는 것 같아.”
“아니야.” 태준이 낮게 잘랐다. “우리를 흔들려고 하는 기억의 잔향일 뿐이야. 감사관이 이미 개입했어.”


지하 7층에 도착했을 때, 그들 앞에는 묘하게 매끄럽게 다듬어진 벽 하나가 나타났다. 벽 중앙에는 열쇠구멍이 있었다.
태준은 숨을 고르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찰칵—
열쇠가 돌아가는 순간, 벽 전체가 서서히 갈라지며 양쪽으로 벌어졌다.

안쪽은 고요했다. 그리고 차갑게 정돈된 방이 나타났다.
‘감사의 방.’


방 안은 마치 법정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긴 목재 테이블, 의자, 그리고 벽면을 따라 빽빽하게 붙은 기록판. 그러나 이곳에 기록된 것은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증언 자체’였다.

사건 일지와 다르게, 이 방에는 사람들의 목소리, 기억, 맹세가 보관되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이 방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세 사람이 들어선 순간, 각각의 증언들이 귀에 울려왔다.

“나는 그날 현장에 없었어…”
“분명히 봤다. 피 묻은 칼을 든 사람을…”
“기억이 달라… 왜 내 머릿속이 이래…”

민서는 귀를 막았다.
“안 들려… 안 들려야 하는데…”
그녀는 무릎을 꿇고 몸을 웅크렸다.

이지은은 이를 악물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견뎌야 해요. 이건 모두 조작된 증언의 파편이에요. 거짓이 진실을 덮어씌우는 순간의 기록들.”


태준은 방의 정중앙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작은 단말기가 놓여 있었다. 오래된 금속 상자 같은 장치였는데, 화면 위에는 낯익은 이름이 번갈아가며 떠올랐다.

〈대체 대상 선택〉

  • 김민서
  • 강태준
  • 이지은

“이게… 이름을 떨어뜨린다는 게 이런 뜻이었군.”
태준은 숨을 삼켰다.
“누군가의 증언을 지키려면,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삭제해야 한다.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민서는 고개를 흔들며 울부짖었다.
“안 돼! 그럼 결국 누군가는 사라져야 해? 왜 항상 이런 선택만 강요받는 거야!”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뒤틀렸다.
벽면에서 검은 그림자가 스며나오더니, 형체를 이루었다. 감사관이었다.

그의 얼굴은 가면에 가려 있었지만, 차갑게 빛나는 눈동자만은 드러나 있었다.
“선택은 피할 수 없다.” 감사관의 목소리는 메아리쳤다. “기록부는 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증언을 살리고 싶다면, 대가를 치러라.”

태준은 이를 악물고 감사관을 노려보았다.
“왜 증언을 탐내는 거지? 진실이 아니라, 증언만?”

감사관은 미소를 지은 듯 고개를 기울였다.
“진실은 단 하나지만, 증언은 수없이 많다. 우리는 그 다양성을 모아 도시를 지탱한다. 누군가의 입을 막고, 또 다른 누군가의 기억을 끌어내며, 결국 기록부는 도시의 질서를 만든다.”

이지은은 숨을 삼키며 속삭였다.
“…그럼 이 방은, 증언을 갈아넣어 유지되는 지하신도의 심장 같은 곳이란 말이군요.”


태준은 단말기 화면을 응시했다.
세 개의 이름. 그리고 박진호가 남긴 열쇠.

‘진호… 너는 왜 나에게 이 선택을 맡긴 거지?’
그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민서의 떨리는 손, 이지은의 결의에 찬 눈빛, 그리고 감사관의 무표정한 시선.

모든 것이 그를 향해 있었다.


“태준 씨.”
이지은이 낮게 속삭였다.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린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해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진실은 증언이 아니라, 그 증언을 담는 방에 있어요. 그걸 잊지 마세요.”

태준은 눈을 감았다. 손끝이 단말기 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예고 ― 15화 〈무너지는 균형〉

감사의 방에서 내려진 선택은 지하신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누군가의 이름이 기록부에서 사라지고, 그 공백은 도시 전체에 파문을 일으킨다.
민서는 끝내 자신이 본 피의 기억과 마주하게 되고, 태준은 감사관의 진짜 목적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나 그 대가로, 돌아올 수 없는 균열이 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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