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릿한 창가에 기댄 채, 나는 기억이라는 낡은 책장을 넘긴다. 어떤 기억은 흑백 사진처럼 희미하고, 어떤 기억은 선명한 수채화처럼 덧칠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기억은 잊고 싶었지만, 오히려 더 깊이 박힌 가시처럼 남아있다.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조각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빚는 원료이며, 미래를 향한 나침반이다.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만남과 이별의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기억들 덕분에 나는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으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하지만 기억은 때때로 잔인하다.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은 현재의 불행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후회로 가득 찬 기억은 밤잠을 설치게 한다. 기억을 지우는 방법을 찾는 이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을 지운다면 우리는 무엇이 될까? 과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방황하게 될 것이다. 기억은 우리의 뿌리이자, 우리 존재의 증거다.
그러니 우리는 기억을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름다운 기억은 꺼내어 감상하고, 아픈 기억은 조용히 묻어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힘으로 삼아야 한다.
기억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나이 들어간다. 때로는 빛바랜 채, 때로는 더욱 선명해진 채로. 기억의 숲을 거닐며,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오늘, 마음에 꽃을 심다(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선물, 주는 것과 받는 것, 그 사이의 풍경 (3) | 2025.09.26 |
|---|---|
| 변화에 대한 두려움 (3) | 2025.09.23 |
| 가을로의 변화 (4) | 2025.09.21 |
| 나답게 산다는 것 (6) | 2025.09.18 |
| 강가의 검은 줄무늬 조약돌 (3) | 2025.09.17 |